쭘 | 8. 오만과 편견(Pride&Prejudice) [진격의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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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둔병단 작성일16-07-21 17:26 댓글7건본문
1. 존똑이 영국
본 시리즈에서 계속 다뤄온 만큼
이제 독자들도 로열 네이비가 근대 대영제국의 형성이래
그 국가전략의 근간(根幹)을 형성하는 요소로 기능해 왔다는 사실을 이해했을거야.
적어도 근대 영국에서는 제 정신 박힌 사람들 중
‘아 시바..우리는 왜 저 돈먹는 하마인 해군에 계속 예산을 투자해야 하는데?’
라고 말하는 인물들은 없었다는거지.
(돈먹는 하마인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지는 사실 따져봐야 아는거다.)
대영제국은 시작부터 식민해양제국으로 출범했고
자원과 노동력의 공급기지로서 식민지를 유지하고
그에 따라 생산한 상품을 세계시장에 뿌려대기 위해
무역로를 확보, 보호하기 위해서 전세계적 제해권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어.
그리고 전략적 관점에서도
영불해협과 전세계적 제해권의 유지는
그야말로 (전편에서 논한)영국산(産) 필승전략을 실행하기 위한 기본, 골격, 척추, 근간
뭐 아무튼 그런 것들을 다 합친만큼 열라 중요한 요소였던거야.
그러니 영국인들은 로열 네이비를 세계최강의 해군으로 만들고 그 위치를 유지시키기로 결심했고,,
뭐 그건 다 공감하는 내용이었어.
문제는 ‘도대체 최강해군이란게 뭐냐?’ 라는거지.
즉 보는 시점에 따라 어느 정도까지 물량이나 인력수준을 갖추어야
저 ‘최강자’라는 거시기스런 개념에 부합하는 포쓰를 인정할 수 있느냐 말야.
해군건설과 유지라는게 그냥 금덩이들을 호스에 재워서 물대포로 쏴제끼는 수준의 돈지랄인데
이걸 얼마나 심각하게 열심히 해야 우리 해군이 최강인거냐?라는 의문은 당연히 가질 수 있는거잖아.
폴 케네디는 그의 저서 ‘강대국의 흥망 Rise & Fall of the great powers'에서
영국이 상대적으로 다른 열강들에 비해 장기간에 걸쳐 전세계적인 패권을 누린 이유로
해군력, 금융신용 및 상업술, 동맹외교 등을 치밀하게 결합하였다는 점을 지적했어.
(웬만하면 서른 살 넘기 전에 읽어보자.)
필자 역시 위 분석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중요한 건 역사적으로 확인이 가능한 현상들이 아니라
왜 영국에게는 그러한 치밀한 삼각결합 Virtuous Triangle이 가능했는가
에 관한 분석이 아니겠어?
위 삼각결합을 가능하게 한 본질적 요소는 바로 영국인들의 전쟁에 대한 태도였어.
지정학적 특수성에 의해 해군을 활용하는 국방정책이 수립되었지만
영국의 국방정책은 다른 대륙계 열강들의 국방정책과는 접근방식이 좀 달랐다.
예를 들면 독일이나 러시아, 또 이들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프랑스
(프랑스는 루이 14세 이후 독일이 대양해군을 기를 때까지 상당 기간 동안 세계 2위의 해군을 유지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육군국가다.)와 같은 대륙계 열강들의 경우
모델스키George Modelski에 따르면 영토국가, 육군국가로 분류되곤 하지.
이들에게 전쟁이란 곧 국가의 근간인 영토, 국민, 주권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행위였고,
이러한 투쟁을 통해 자신들의 주권을 보호하고 나아가 National Prestige를 획득한 후(국위를 선양한다는 의미)
이런 국위(National Prestige)를 활용해서 타국에 정치,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여
자국의 국익을 추구하는게 그들의 외교정책의 근간이었던거야.
근데 영국이나 전성기의 베네치아, 네덜란드, 현대의 미국과 같은 해양국가들은 전쟁에 대한 관점이 좀 달랐지.
이들에게 정치란 결국 국민들을 먹여살리는 문제고
전쟁이란 바로 이 먹고사니즘을 해결하기 위해 경제적 이익을 확보하고 추구하기 위한 방편이고 수단었던 거거든.
이런 나라들의 특징이..
열강으로부터 본토공격을 받을 위험성이 적다 보니
(네덜란드는 좀 예외지만, 그래서 얘들은 전국토를 요새로 만들어 버렸다.ㄷㄷㄷ)
전쟁에 대한 시각 자체가 공포에 사로잡혀 감성적으로 접근하는게 아니라 주판알을 튕기며 냉철하게 접근하는 경향이 있어.
뭐가 더 바람직한지는 각자 생각해보자.
(이런 이야기는 사실 기본 아니냐?)
최근 문제되고 있는 사드 미사일을 배치하는 문제에서
중국에 의한 대량의 무역보복을 결국 누가 쳐맞게 되는지는 일체 걱정하지 않고
국위선양과 한미동맹유지의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대한민국의 현실도 함께 생각해보면...암울하지?
왜냐고?
대한민국은 섬나라잖아.
휴전선 위로는 어떠한 물자나 인력 자원의 교류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잖아?
그냥 빠가들이 위에 있다보니 이런 기본적인 개념도 제대로 잡고 있지 않은 채 국가대사를 결정하는게 보이잖아.
필자에게 안보는 정쟁의 대상이 아니라는 어떤 할머니의 말씀은 정말 뼈아픈 지성의 부재로 다가온다.
안보든 경제정책이든, 외교정책이든 그 중에 정치와 연결되지 않을 것 따위는 없기 때문이지.
제대로 개념탑재도 못하는 빠가들이 눈막고 귀막고 잔소리듣기 싫으니까
안보는 그냥 닥치고 내가 하잔대로 하라.
라고 말할 때 쓰는 말이 저 드립이잖아.
뭐 어쩌겠나. 잘난 국민들이 그 할머니한테 국가의 운명을 맡겼는데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개떼처럼 일어나서 맡기셨지.)
암튼 해양국가들의 경우
전쟁에 접근하는 태도 자체가 훨씬 더 실용적이고,
그에 따라 전쟁계획의 근간을 이루는 국가재정정책이 재무적으로 훨씬 건전해지는 경향이 있어.
처음부터 영국의 해군정책을 입안한 이들은
‘야 이 거지새키들 우리한테 덤비기만 해봐. 내레 전함들을 끌고 가서 다 박살내 주갔어.’라고 생각해서
세계최강의 해군이 필요하다고 결론내리지는 않았을거다.
(이런 스타일의 남자들은 전반적으로 싸움을 못한다.)
아마 이런 사고과정을 거쳤겠지.
‘우리는 섬나라다.’
‘우리가 먹고 살려면 무역을 해야 한다.’
‘근데 우리는 조그마한 섬나라다.’
‘그래서 상품을 만들어내기 위한 노동력과 자원이 딸린다.’
‘그래서 걔네들을 확보하기 위한 식민지가 필요하다.’
‘이 식민지를 유지하고 무역로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강한 해군이 필요하다.’
‘근데 해군은 돈을 많이 처먹는다.’
‘그러니 우리는 육군에 돈을 많이 들일 수 없다.’
‘결국 우리는 대륙에서 패권국가가 출현할 경우 자력으로 그 놈을 관광태울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패권국가랑 우리 대신 붙어 줄 동맹국이 필요하다.
얘들을 관리하는게 육군 키워 유지하는거보다 더 싸게 먹히니까.’
유럽의 군주들에게 전쟁이란
사냥이나 섹스와 비슷하게 왕족들이 벌이던 자존심 병신배틀이거나
광신적인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일어나는 월드컵인 경우가 많았지만
영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 빨리 안정적 정치체제(입헌군주정과 의회정치)가 자리잡았고
산업혁명 이후 강력한 부르주아지가 형성되면서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졸라 똑똑한 애들이 국가정책에 개입할 수 있게 되는 토대가 형성되었고,
바로 이 정치적 선진성과 안정이 바로 국가정책의 효율성으로 직결된거다.
2. Double Standard Doctrine
자 위와 같은 사고과정을 거치고 있으니
바로 저 비싼 해군을 어느 정도 수위까지 삐까번쩍하게 유지해야 하는지가 문제되는건 당연하겠지.
영국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지정학적 환경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계최강의 해군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한 국가적 합의가 쉽게 이루어졌어.
또 얘들의 전쟁과 국방에 대한 태도가 매우 실용적이고 정치적이었기 때문에
저 세계최강의 해군을 그냥 막연한 지향점으로 만들어놓고
사기꾼들이 국민들을 상대로 사기치게 만들어 놓지도 않았어.
일응의 기준으로 삼을만한 타당한 합의지점이 필요했던거지.
거기서 나온게 바로 그 유명한 Double Standard Doctrine이야.
‘영국은 세계최강의 해군을 유지하기 위해
영국을 추격하는 세계 제 2위와 3위의 해군이 가진 해군력을 모두 더한 것보다
더 우월한 전력을 평상시에 확보, 유지해야 한다.’
라는 것이 바로 이 2배수 기준 원칙의 요체(要諦)인거지.
이건 원칙과 실용의 결합에서 나온 기준인데..
만약 영국이 2차대전 직후의 미국처럼 세계 GDP의 40%를 생산하는 압도적인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Double Standard Doctrine 따위는 필요가 없었을거야.
2차대전 이래 미국은 그냥 세계 2위부터 9위까지의 해군을 다 합친 것보다 강력한 해군을 가지고 있으니까.
근데 영국은 미국처럼 압도적인 강대국이 아니었어.
18세기의 영국은 세계 1위의 금융,무역국가이기는 했지만
공업력에서 경쟁국인 러시아, 프랑스 등을 확실하게 압도하지 못했어.
통장에 돈이 많다는 것과 공장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물건을 바로 찍어낼 수 있다는 것은 다르잖아.
현대의 미국이 둘 다 가지고 있는 부자라면, 영국은 통장에서 돌리는 돈은 많은데 막상 돌리는 공장은 별 거 아니었거든.
19세기가 되자 그나마 독일이 통일되면서 영국은 공업력과 산업기술 면에서도 독일에 딸리기 시작해.
즉 영국의 Double Standard Doctrine은
우리가 우리 수준에 맞지도 않는 해군을
어느 정도의 수위까지 국민들의 고통을 감내하며 유지해야 하는가.
라는 현실적 고민의 결과물인거야.
영국은 경쟁국과 다르게 북해와 대서양의 제해권만 유지해야 했던게 아니라
전세계의 바다를 지배할 필요가 있었어.
식민지와 영연방이 전 세계에 퍼져 있었으니까.
그러니 단순히 세계 1위의 해군을 유지하는 것으로는 안심할 수 없지.
세계 2,3위의 해군을 갖춘 나라가 모두 적성국이 되는 최악의 경우,
영국 해군의 일부는 적성국 근처의 해안을 봉쇄하면서도
동시에 세계의 무역로를 지키면서 제해권을 확보해야 했거든.
그래서 2,3위의 해군을 합친 것보다 더 강한 해군이 필요했던거야.
(프린스 오브 웨일즈)
위 사진은 말레이 해협에서 일본 해군 항공대에 의해 격침당한 HMS 프린스 오브 웨일즈의 사진이야.
위 전함은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자 순양전함 HMS 리펄즈와 함께 동양함대를 구성하고
항공기 지원 하나 없이 일본제국해군 전체를 상대하러 갔다가 싱가포르 앞바다에 수장된다.
영국 해군이 배가 없어서 배 두 척만 달랑 보낸게 아니겠지?
그 대단한 로열 네이비는 대서양에서 독일과 이탈리아를 봉쇄하고 유보트를 상대하기에도 벅찼거든.
이게 바로 해양제국 영국이 가지고 있덨던 취약점인거야.
전선이 너무 넓어서 전력을 분산시킬 수 밖에 없다는 것.
어쨌든, 진격의 상식 시리즈가 다루고 있는 시기를 기준으로 하자면
19세기는 프랑스와 러시아의 해군전력을 더한 기준보다 더 우세해야 하는 것이고
20세기에는 프랑스와 독일의 해군전력을 더한 기준보다 더 우세해야 Double Standard Doctrine을 유지하는 거였겠지?
그런데 미국과 일본이 이 경쟁에 뛰어들면서 영국의 해군전략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되었어.
워싱턴 해군조약만 보아도 영국은 미국에게 이미 자국과 대등한 수준의 해군력을 유지하는 것을 인정했으니까.
(미국ㆍ영국ㆍ일본ㆍ프랑스ㆍ이탈리아의 5개국의 주력함(전함)의 총 톤 수를 5:5:3:1.67:1.67의 비율로 제한)
그리고 2차대전을 치르면서
더 이상 영국은 어떤 방법을 써도 미국보다 우월한 해군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이 자명해지게 되자
(윈스턴 처칠은 영국이 짜내고 짜내면 당분간 세계 1위의 해군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개드립쳤지만
영국인들은 이걸 노망으로 받아들여서 승전 직후 처칠을 은퇴시켜 버림.)
(이 아저씨가 멘탈은 참 강했는데 머리는 참 나빴어.)
영국은 더 이상 세계정치의 조정자이자 개입자로서의 지위를 포기하고
신흥 패권국가인 미국의 동맹국으로 만족하게 된거야.
(이런 거 보면서도 헛소리 하고 있으면 치매맞지.)
3. 오만과 편견
자 저런 국방전략을 갖고 기준까지 마련한 영국의 엘리트들이 매우 쌈박, 존똑하긴 한데 말이야.
기준을 잘 갖추어 두는 것과 저 기준을 제대로 적용하는건 좀 다르단 말이지.
영국인들도 어쩔 수 없이 편견의 노예였기 때문에
어떤 경쟁국이 영국에 위협적인 수준의 해군을 건설하기 시작할 때 반응들이 좀 달랐어.
예를 들면 프랑스 식민제국이 함대를 확충하기 시작할 때는
‘아..니들 또 개기려구?ㅋㅋㅋㅋ애써봐라..’
라고 동맹국들과 함께 유연하게 대처했지만
러시아가 함대를 재건하려 하면 상대적으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지.
크림전쟁이나 노토전쟁 이후
러시아의 흑해함대는 아예 보스포러스 해협을 통과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이후 러시아가 발트해의 제해권을 추구하자
영국은 상트페테르스부르크와 북극해까지 함대를 진출시키고 대러시아 봉쇄에 나섰어.
(크림전쟁은 영국이 나이팅게일 뜨라고 일으킨 전쟁이 아니라 러시아 흑해함대 고자만드려고 일으킨 전쟁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이루어진
독일과 미국의 해군확충에 대한 이중적 태도는 더 가관이었어.
우선 영국은 미군의 해군확장에는 별다른 견제나 대처를 하지 않았어.
그런데 빌헬름 2세 시절에 이루어진 독일의 2차에 걸친 해군법 제정과
그에 따른 독일해군의 건함계획에는 극단적으로 경계하는 태도를 취했지.
독일이 세계정책weltpolitik을 표방하며 동아프리카 식민지를 얻기 위해 움직이자
영국은 선전포고라도 때릴 듯이 으르렁대며 독일을 압박했다.
(지들은 세계를 다 먹어놓고 나의 독일은 이거 먹었다고 아주 죽이려고 했다.)
1차대전은 흔히 철도시간표의 전쟁이라고도 해.
세르비아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암살당했는데 왜 전 세계가 전쟁에 돌입해야 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열강들이 가지고 있었던 공포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해.
(케네디 죽었다고 핵전쟁 났으면 황당했겠지?)
100여년 전의 세계는 UN과 같이 강제력을 가진 국제기구가 없었고
강대국들 간의 동맹을 통해서만 위태롭게 평화가 유지되고 있었어.
이런 시대에는 어느 나라가 침략국인지 나쁜 놈인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분쟁이 발생한 나라가 어떤 나라와 동맹관계인지가 중요한 법이지.
현대에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이유도 없이 패면
전 세계가 그걸 욕하고 바로 유엔이 제재를 내리려 하지만
1차대전 직전의 세계에선 이라크가 누구 친구인지 쿠웨이트의 오야붕이 누구인지가 중요할 뿐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먼저 쳤다는 건 중요하지 않았어.
선빵을 치는 놈이 나쁜 놈이라는 이야기의 국제법 상 근거도 결국 1925년에 체결된 부전조약이거든.
결과적으로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세르비아에서 죽으니
오스트리아 정부는 세르비아에 반 오스트리아 세력들을 니들 손으로 정리하라는 내용의 최후통첩을 보내고
세르비아는 자신의 동맹국인 러시아에 SOS를 치게 되지.
러시아는 오스트리아에 세르비아에 대한 내정간섭을 중지하라고 갈구고 바로 총동원에 들어가고
이걸 알게된 오스트리아의 친구인 독일은 러시아에게 총동원을 중지하라고 갈구고 내 말 안들으면 전쟁이라고 위협한거야.
상황이 이렇게 되니 러시아의 동맹국인 프랑스가 독일에게 너네 총동원 중지하라고 갈구면서 총동원에 들어가고
양면전이 일어날 것에 두려움을 느낀 독일은 슐리펜 계획에 따라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에 독일군의 진주를 허락할 것을 요구하고
벨기에와 룩셈부르크가 이를 거절하자 독일군이 벨기에 국경을 넘으면서 1차대전이 발발하지.
(이런 병신력 배틀 끝에 죽은 인명이 얼마다?)
1차대전이라는 초유의 대사건이 저런 어이없는 과정을 통해서 발생한 이유는 간단해.
강대국 모두가 타이밍놓치면 나도 바로 죽는다..라는 위기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야.
보불전쟁을 통해 유럽열강들은
근대국가가 총동원령을 내려 전 국민을 전쟁터에 쏟아붓는 타이밍이 조금만 늦어도
순식간에 전선이 와해되고 파멸적인 결과가 초래하는 광경을 똑똑히 확인했거든.
그런데 적어도 명예로운 고립을 표방하고 지정학적 요건 상 시간적 여유를 충분히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유럽제국과는 달리 평화협상을 중재하거나 파멸적인 결과를 지연시킬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영국이
저런 어이없는 결과를 막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해?
바로 독일과는 한 하늘 아래 살 수 없다는 혐오, 분노, 경계심 때문이었어.
통일독일은 채 50년도 되지 않는 사이에 중부유럽을 석권하고
영국을 공업력과 본토인구에서 압도하는 경제, 군사대국으로 성장했고
그들이 맘먹고 영국의 제해권에 도전한다면
영국이 사활을 걸고 있는 Double Standard Doctrine은 절대 유지될 수 없다고 영국인들은 판단한거지.
그러니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면
동맹국들이 함께 으르렁댈 때 러시들어가는게 유리하다고 보고
영국은 프랑스와 함께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게 되지.
(전쟁이란게 원래 그래...팀플인거여.)
그런데 1차대전 후 미국의 공업력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그에 걸맞는 해군을 건설하기 시작하는데도 영국은 속수무책, 수수방관일 따름이었어.
그래서 학자들 중에는 영국이 미국에게 베풀었던 관용과 보여주었던 인내심의 절반만
신생 독일에게 나누어 주었어도 1차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생겨난거야.
그리고 1차대전이 없었다면 대공황도 다른 시기에 다른 강도로 나타났을 것이고
히틀러와 파시즘의 광풍이 온 유럽을 휩쓰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겠지.
(이 미친 놈도 결국 오만과 편견이 낳은 사생아라고..)
‘미국은 앵글로 색슨 문화와 민주주의 체제라고 하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는
영국새끼라서 경계하지 않은거 아냐?’
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막상 미국은 영일동맹이 체결되었을 때
세계 1위의 해군인 로열네이비와 세계 3위의 해군인 일본해군이 미국을 협공하는 상황을 극도로 경계했고
더 나아가서 2차대전 중에는 동맹국인 영국이 전후 미국의 패권을 인정하지 않고 삐딱하게 나오면
기습적인 핵공격으로 일거에 브리튼 본토를 날려버리고
캐나다 전체를 군사적으로 정복하는 둠스데이 플랜을 세우고 있었어.
(토니 블레어 정부 시절 화이트 페이퍼가 공개되서 둠스데이 플랜이 알려지자 영국의 대미여론이 급랭했을 정도로
미국은 대영제국이 반항할 경우 아예 갈갈이 찢어버릴 독한 워플랜을 가지고 있었다.)
이 둠스데이 플랜은 폐기 후 50년이 지난 뒤 미외교문서(White Papers)가 공개되면서
세상에 나와서 영국과 세계를 경악에 빠뜨리지.(영국 입장에선 소름끼치지 않았겠냐?)
결국 영국이 러시아와 독일에 대해서는 그렇게 야박하고 위협적인 정책을 취하면서
미국에 대해서는 미온적이고 유연한 정책을 취한 것은 딱히 근거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냐.
2차대전을 일으킨 나찌스 독일과 군국주의 일본이야 뭐 대책없는 애들이었지만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영국과 경쟁했던 러시아 제국과 독일 제국은
추축국과 같은 똘아이들이 아니라 그냥 유럽 열강 중 하나였던 정상국가였거든.
이제 여기에서 대영제국의 세계대전략과 외교정책, 국방정책들에 대해 살피는 과정들을 마무리하고, 초심으로 돌아가자.
본 시리즈의 시작이었던 전함 미카사의 배경이 되는 러일전쟁의 진짜 원인은
러시아 제국에 대한 영국의 오만과 편견이었고
구체적으로는 그에 바탕을 둔 대러시아 봉쇄정책인 Great Game이었어.
이제 돌고 돌아 이 Great Game의 전개양상에 대해 살펴볼 때가 된거야.
1. 대전략(Grand Strategy) [진격의 상식 시리즈]
2. 명예로운 고립(Splended Isolation) [진격의 상식 시리즈]
3. 세력균형정책(Balance of Power) [진격의 상식 시리즈]
4. 해가 지지않는 제국(The Empire under the Sun.) [진격의 상식 시리즈]
5. 불패의 전통(Invincible Legacy) [진격의 상식 시리즈]
6. 사자의 심장(Heart of the Lion) [진격의 상식 시리즈]
7. 태양의 후예(Sons of the Empire) [진격의 상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