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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조 이성계는 광대뼈 도드라진 무골상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깡통 작성일16-04-2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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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년전 인기사극 <용의 눈물>에서 탤런트 김무생의 열연으로 우리 눈에 익숙했던 조선 태조 이성계(1335~1408). 그의 진짜 얼굴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동안 이를 짐작케할 사료는 전북 전주의 경기전에 남은 1872년작 태조 어진(보물 931호)뿐이었다. 푸른 곤룡포를 입고 용문양 의좌에 앉은 그림 속 태조는 흰 수염 성성한 노년의 근엄한 군주다. 그런데 최근 이와 다른 젊은 시절 기골장대한 무인풍의 이성계를 그린 어진(어진) 2점의 사진이 발견되어 새삼 관심을 모은다.

    국립중앙박물관 이수미 학예연구관은 11일 한성대에서 열린 미술사학연구회 정기학술대회를 통해 일제 때 함남 영흥 본궁(이성계의 옛집)에 있던 태조 어진의 유리원판 사진을 학계에 공개했다. 그는 또 이 원판 사진과 비슷한 구도인, 일제 때 잡지 <개벽>70호(1926)에 실린 초상사진도 같이 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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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학예관은 함께 발표한 논문 ‘경기전 태조 어진의 조형적 특징과 봉안의 의미’를 통해 영흥 본궁의 어진 사진은 조선총독부의 1회 전국 사료조사가 진행중이던 1911년 9월19일 경내 준원전에서 찍은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 두 사진은 얼굴 윤곽이 원만한 노년기의 경기전 어진과 달리 검은 수염에 광대뼈가 도드라지고, 마른 모습이어서 청장년기 얼굴로 추정된다. 복식과 용상 등의 모습은 큰 차이가 없지만, 어진의 전체 그림 폭과 길이는 경기전 것보다 훨씬 길다는 설명이다. 또 <개벽>에 실린 어진 사진은 구도나 묘사로 보아 영흥 본궁의 어진 사진에 인공적인 손질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어진이 있던 영흥 준원전은 개국초 태조 어진을 봉안하기 위해 만든 여섯 어진전 가운데 하나다. 사진 속 어진은 1837년(헌종 3년)에 도둑이 들어 파손되면서 새로 본떠 그렸다는 기록이 있다. 지난 5~6월 국립전주박물관 특별기획전 ‘왕의 초상’에서 경기전 어진과 함께 공개됐으나 당시엔 학계의 조명을 받지 못했다. 준원전 어진은 해방 뒤 북한에 남게 됐으나 현재 행방은 알 수 없다고 한다. 이 학예관은 “원본은 아니지만, 태조 어진의 원형을 반영하는 청장년기의 얼굴을 상세하게 그렸다는 점에서 어진의 미술사적 연구에 획기적인 사료”라며 “북한 당국과 연락해 원본의 존재여부와 소재부터 파악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현재 왕명으로 그려진 조선왕조 어진 가운데 온전한 완본은 경기전의 태조 어진이 유일하다. 이외에 영조, 순조, 익종, 철종의 타다 남은 어진 부분 4점과 1901년 왕명으로 원본을 옮겨 그린 영조의 반신상 어진이 전해진다. 대한제국 시대 개인 부탁으로 그린 고종과 순종 초상 등까지 포함하면 모두 10여본이 알려져 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8-01-25 16:41:10 생생정보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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