쭘 | 2. 바람(風) 篇 [총선특집 리뷰] 하늘과 바람과 별과 개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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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르민 작성일16-04-20 16:07 댓글8건본문
1. 역풍(逆風)
정치지도자들이 유권자들의 집단적 포비아를 자극해서
그에 따른 반발이 일어나게 되면
선거에서 그 댓가를 치르게 마련이다.
언론이나 정치평론가들은 이를 역풍이라고 한다.
어렵게 설명할 것 없이,
유권자들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나 그가 속한 집단에 대해
집단적 반발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될 경우 발생한는 표의 쏠림현상이다.
헌정 사상 최고의 역풍은 2004년 4월 15일에 벌어진 제 17대 총선에서 일어났다.
국민들은 자신들이 직접 뽑은 대통령이
납득할 수 없는 탄핵으로 권한을 정지당한 사실에 분노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은
무리한 탄핵을 이끌어 낸 한나라 당에 대한 반발심으로 표출된다.
(니덜이 감히 우리가 뽑은 대통령을 건드려?)
결과는 놀라웠다.
47석에 불과했던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획득, 과반수를 확보한 수권정당이 된 것이다.
이번 4. 13총선에도 역풍이 불었다고들 한다.
필자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역풍은 어떤 요건이 갖추어 질 때 불어오게 되는 걸까.
어리석은 정치인들은 무슨 짓들을 하다가 역풍을 맞게 되는가.
역풍이라고 다 같은 역풍인가.
역풍은 우리가 처한 정치현실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등이 이번 글에서 다룰 주제가 될 것이다.
2. 요 건
역풍이라는 것은 일종의 집단심리의 발호이다.
특히 대중들의 반발심리를 그 기초로 한다.
즉 대중들이 특정 정치세력에 대해 분노할 때 역풍이 분다.
그렇다면 대중들이 가장 격렬하게 반발하는 대상과 지점들을 살펴보면
어떤 요건들이 갖추어졌을 때 역풍이 오게 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가. 무 시 Disregard
사람은 누구나 무시당하면 화를 낸다.
이것은 인간 본연의 감정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무시를 당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생존에 대한 위협에 해당한다.
누군가에게 무시를 당해도 분노하지 않는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당연히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했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높은 수준의 권력이나 영향력을 누리지 못했다.
그에 따라 생존에 필요한 자원확보의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할 수 밖에 없었고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됨에 따라 번식 경쟁의 과정에서 도태된 것이다.
(이 정도 포쓰는 있어야 덜렁대는 무기를 쓸 수 있다.)
그래서 일반적인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무시당하면 이유 여하를 묻지 않고 분노하게 되어있다.
대표적인 역풍으로 뽑히는 17대 총선의 경우
대부분의 국민들은 자신들이 뽑은 대통령을
대선 이전 총선에 의해 다수의석을 차지한 한나라당 의원들이 명분없이 탄핵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자신들의 선택이 무시당했다고 느꼈다.
20대 총선에서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유승민 의원에 대한 친박계의 공천배제가 유권자들을 자극했다.
여론과 민심은 분명히 유승민 의원이 표방한 따뜻한 보수, 중도보수,
야당과 타협하고 분배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보수로 향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그녀’의 눈치만 보기 바쁜 완장찬 친박들은 곁눈 한 번 주지 않고 유승민 의원을 몰아내는 것에만 골몰했다.
(혐짤주의)
(아주 좋은 코미디였다고 생각합니다.)
필자는 친박계가 비박계를 공천학살하고
그녀만의 기사단을 조직하기 위한 저급한 공천을 했다고 하더라도
민심을 가져가고 있었던 유승민 의원에 대한 공정해 ‘보이는’ 공천만 있었다면
새누리가 수도권에서 이토록 참패했을 거라고 생각지 않는다.
나. 오 만 Pride
대중들은 강자를 사랑하고 지지를 보내지만
강자가 오만한 모습을 보이면 두려움을 느낀다.
저 강자들이 스스로의 힘을 자각하게 되면
권력을 위임한 자기들을 존중하지 않게 될 것이고
결국 자신들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으라라는 경계심과 두려움.
그렇기에 대중들은 강자의 오만을 혐오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두려워한다.
그렇다면 대중들이 강자가 오만해졌다고 생각하는 순간들은 언제일까.
대중들이 싫어하는 행동을 보란 듯이 할 때,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게 보이는데 철저히 무시하고 그 결정을 정당화 할 때
그리고 대중들이 사랑하는 자를 핍박할 때다.
(이 정도 빠가도 민중들이 보는 앞에서 막시무스를 건드리지 못했는데..)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 아니 정확히 친박들은 이 모든 오만의 징표들을 다 보여주었다.
국민들이 싫어하는 계파갈등과 권력투쟁을 보란 듯이 했고
국회가 정상화되고 민생관련 법안들이 제대로 처리되기를 바라는 민의를 외면한 채
야당과 협력해야 한다고 말하는 여당 내 온건파를 철저히 탄압하고
테러방지법과 같은 속내가 뻔히 보이는 정략적 법안통과를 위해 국회를 마비시키고도
북풍과 언론플레이를 통해 국민들을 속이려 했다.
(항상 통하던 방식이었지만 이번에는 너무나 그 속이 뻔히 보였다는게 문제다.)
국민들을 아주 등신으로 본거지.
그리고 그 오만의 끝은
유승민에 대한 지저분한 공천과정에서 정점을 찍었다.
전국의 유권자들과 대구시민들이 두 눈 부릅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골수 지지자들도 납득하지 못할 뻔뻔하고 비열한 방식으로
현재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인물 중 한 명인 그를
완장맨들을 앞세워 핍박하고 학대하는 모습을 보여준 장면에서
혐오게이지 만렙달성.
(그들은 국민들 앞에서 너무나 쓸데없이 강한 척 했어.)
3. 등급과 분류
역풍에도 급이 있다.
가. 피할 수 없는 역풍
위정자가 고도의 정책적 판단을 통해
어느 정도 감수하려고 마음먹은 역풍은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건전하다고 볼 수도 있는 역풍이다.
예를 들면 국가에게 재정적 부담이 큰 국민연금이나 사회보험관련 법안들의 경우
국가 재정이나 연금을 위한 기금확보 전망등을 냉철히 판단하고
헌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일종의 컷팅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물론 국민들은 그런 거 모르지. 자기한테 줄 돈 적게 준다고 난리치게 마련이다.
어떠한 논리로도 이들을 설득할 수는 없다. 있다고 착각하면 바보지.
이때 불게되는 단기적인 역풍을 감수하는건
(이 형이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연금개혁하면서 개까였던거 기억나냐?)
(그땐 천하의 ㄱㅆㄴ이었지만 지금은 반대파도 인정하는 개혁으로 남았다.)
국가지도자라면 당연히 갖추어야 할 용기, 책임감과 관련된 문제다.
나. 돌발적인 역풍
또 어떤 한심한 놈이 생각없이 내뱉은 말 때문에 역풍이 불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과거 열린우리당 의장이었던 정동영 의원이 했던 말
‘노인 분들은 그냥 투표날 쉬셔도 됩니다.’
(입으로 흥한 자, 주둥이로 망하는 법)
솔직히 나도 수십 년간 세뇌되고 판단능력 떨어지는 노인들 제발 투표 좀 덜 했으면 좋겠다.
60대 후반 쯤 되면 인지능력이나 판단능력..고등학생 보다 뛰어난 사람들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이 놈의 투표권은 한창 합리적이고 사리분별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10대 후반 청소년들에게는 전혀 주어지지 않고
똥인지 된장인지도 구분 못하는 노인들에게는 죽을 때 까지 주어진다.
노인들 아무 생각 없이 내일 죽을만큼 아파도 투표장 꼬박꼬박 간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게 바로 습관의 힘이거든.
그리고 더 무서운 걸 알려줄까?
요즘 백세 시대다.
두려움이란 뭔지를 한 번 더 알려줄까?
그 분들 형제도 엄청 많아.
지금 젊은 세대는 형제 두 명만 있어도 많다고 하는데
40-50년대 베이비붐 세대 분들은 형제가 적어도 기본 넷이다.
한 마디로 전 연령대에서 혐오를 받아도
50대 후반 이상에게서만 지지를 받으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기현상이 발생하는거다.
(쪽수는 언제나 옳다.)
그러다 보니
이 노인들을 홀리고 속여서 선거에 이용하는 일들이 위정자들의 주요 태스크가 되었다.
물론 이 짓의 만렙은 그녀의 기사단들이 찍고 있다는 건 다 아는거고.
정치 같은거 그냥 취미 정도로만 관심갖는 내가 봐도 짜증나는데
저걸 소명이든 밥벌이든 메인 잡으로 달리는 사람들 입장
더군다나 저 폭풍같은 노인표 땜에 허구헌 날 발리는 입장에선 얼마나 기분들이 더럽겠냐.
사람이라면 순간적으로 몸들 불편하시면 집에서 쉬시라고 드립나갈 수도 있지.
그런데 정치하는 사람들은 절대 그러면 안된다.
그들이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것이 실언이다.
노인, 여자, 제대군인, 장애인 등처럼
사회적으로 소외의식을 느끼고 스스로 약자라고 여기는 이들은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뻔한 이야기를 웃는 얼굴로 해도
절대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들 가슴 속 한숨과 응어리, 불안감, 소외감, 피해의식을 건드리면 안되는거지.
이런 이들이 세상에서 젤 듣기 싫어하는 말이 뭔지 아나?
바로 맞는 말이야.
물론 헷갈리면 안된다.
여기서 맞는 말은 ‘정당한 말’, ‘올바른 말’이라는 뜻이 아냐.
‘사회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에 객관적으로 부합하는 말’
정도라고 해석하면 될 듯.
맞는 말을 듣는 순간 이들은 폭발한다.
그 맞는 말을 듣는 순간 자신들을 억압하고 위협하는 세상의 무게가 몸서리치도록 느껴지거든.
한국사회에서
‘가임기 여성의 경제활동이 가지는 사회적 경제적 비용의 산정’
이라는 담론을 문제삼는 순간 매장되지 않을 정치인이 있다고 보는가?
그래서 정치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위와 같은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언급해서는 안된다.
따지지 마라. 어쩔 수 없다. 인간의 본능이다.
반드시 언급해야 할 정치적, 사회적 필요가 있다면
최대한 우아한 표현으로 돌려 말해야지.
노인일수록 ‘아직 한창이시네요.’
기성세대일수록 ‘대한민국이 자랑스럽습니다. 어르신들 존경합니다.’
어리버리한 여성일수록 ‘여성이 행복한 나라 대한민국’
같은 말들을 듣고 싶어한다.
(아파 뒤질 것 같은 청년들에게서도)
(이런 나라 만들어줘서 열라 고맙습니다..소리 듣고 싶어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국정교과서인 것입니다!)
(집에 가서 아부지 잘 모시자. 가정에서 소외된 어른들은 이렇게 된다.)
슬슬 감들이 오시는가.
어떤 정치인이
‘노인들은 쉬어도 된다’
‘다까끼 마사오라고 아세요?’
‘평범한 여성 최고의 직업은 현모양처다.’
‘유승준, 그만하면 입국허가 내주자. 많이 무따 아이가.'
라는 말을 입밖으로 내는 순간
지구는 멸망한다.
(우리의 지구를 위해 남의 부모욕은 웬만하면 하지 말자.)
다. 곪아터진 역풍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불었던 역풍은 위와 같은 두 유형에 해당하지 않는다.
위에서 언급한 역풍의 요소들이 지속적으로 드러남에 따라 쌓이고 쌓여 터진 역풍
한 마디로 최악의 역풍이다.
그리고 역풍이 불 것은 청와대와 새누리도 다 알고 있었다.
그들이 오판한 것은 ‘역풍의 강도와 세기’다.
이번 총선이 끝나고 나서 청와대와 새누리가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는 기사들이
출입기자들을 통해 쏟아져 나왔는데
그녀의 기사단 속 마음이란게 결국 딱 하나 아니었을까?
‘아 우리가 그정도로 쎈 놈들은 아니었구나.’
쟤들은 딴 놈들은 몰라도 지들은 그래도 되는 줄 안거다.
자기들 지지층의 대부분이 반공교육으로 세뇌되어 있는 구세대고
선동과 조종이 쉬운 저학력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영남과 노인층에 의해 인구빨 버프를 제대로 받는다.
무엇보다 사전에 야권을 분열시키는데 성공했다.
삼국지를 보자.
제갈량이 아무리 날고기는 재주가 있어도
촉오동맹이 깨지는 순간 천하의 형세는 결정되었다.
조조가 손권을 부추겨 형주의 관우를 치도록 유인한 후
멀티 없는 촉나라가 제갈무후의 자원최적화와 컨빨로
맵 전체 다먹은 위나라와 싸우다가
제갈무후 죽음과 동시에 장렬히 산화하는 스토리로 이미 결정난거다.
(빨간 색과 초록 색이 싸우기 시작하면 파랭이는 무조건 이긴거다..잠깐..이게 아닌가?)
전체 유권자의 35%이상이 골수 새누리 지지자들
바로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인식과 오해가
청와대와 친박들이 보여준 저 어마무시한 오만의 실체다.
바로 그 오만이
반대자들 뿐만 아니라 지지층까지 무시해도 된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졌고
그녀가 강력히 추구하는 ‘권력의 사유화’에 전적으로 협력하는
완장질을 하더라도 큰 탈없이 넘어갈 수 있을 것.
이라는 장밋빛 환상을 심어준거지.
그 오만이 최소한의 지점에서 절제되어 있었다면
이번 역풍은 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들은 오판했고
이번 선거에서 저들에 대한 쌓이고 쌓인 혐오감에서 비롯된 역풍이 불었고
선거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분명하다.
역풍들 중 첫 번째 역풍은 크던 작던 사회의 발전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 역풍은 급격한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한다. 일종의 해프닝에 불과해.
그저 특정 정치세력에게 유리하게 또는 불리하게 작용할 뿐이다.
그러나 세 번째 역풍의 경우 다른 조건들을 만족할 경우
급격한 사회적 변화를 아주 드물게 이끌어 내고는 한다.
4. 교 훈
그러나 이 땅의 주인인 하늘들이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다.
진승 오광의 난이 실패한 이래
아니 인류역사가 기록되지 조차 않았던 선사시대부터
민중들의 분노와 그에 기반한 바람은
시대발전과 진보를 가져온 동남풍이었던 경우보다
찻잔 속 태풍에 그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이다.
(혹시 vs. 역시)
조직화 되지 못한 바람과 사회 운동은
언제나 기성화된 찻잔의 벽을 허물지 못한다.
기득권의 위기감과 각성은 아주 쉽게 금강불괴의 찻잔을 만들어 낸다.
그들은 그런 찻잔을 만들어낼 힘이 있고
또 어떻게 만들어 내는지 그 방법을 안다.
막상 바람을 탄 이들은 그 바람을 어떻게 활용해서 찻잔과 싸울지 모르는데 말이지.
(형은 시바 도대체 뭐 좀 알고 웃는거야?)
역풍을 맞은 이들은 다시 냉정하게 자신들의 실수를 돌아볼 것이고
역풍에 편승한 이들이 우주의 기운을 느끼며 생각없이 달린다면
결국 바람이 불기 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니 더 나빠질 지도 모른다.
이 바람을 찻잔 속에서 꺼내기 위해 필요한 건 바로
‘별’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