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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환수운동의 대부 "혜문스님"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깡통 작성일16-04-0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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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문스님은 경기도 남양주시 봉선사에 계시는 스님이다.
    이 스님이 누구인지 국민들은 잘 모르지만....
    이 분이야 말로 일본의 약탈문화재 반환운동을 주도하시고 있는 분이다.
    나도 오늘 이 같은 사실을 근래에 알았다.

     

     

    지난 12일 일본의 “간 나오토” 총리가 한, 일 병합은 강제로 이루어 졌으며 이를 통탄의 심정으로 반성하고,

    약탈해 간 조선왕실의궤를 반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하여 우리의 이명박 대통령은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일본의 발표를 환영 한다고 화답하였다.


    일본이 반환 하겠다는 왕실의궤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일본의 궁내청 도서관에는 한국에서 약탈해 간 문화재 중 총 81종 167책의
    조선왕실의궤가 있다한다. 이 가운데 특히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를 이번에
    반환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만히 있는데 일본이 자진해서 약탈문화재를
    반환하겠다고 했을까?
    아니다.
    우리 국민들은 잘 모르지만 그동안 이를 반환받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기우리신 분들이 있다.


    고마운 그분들이 누구일까?
    문화재청 사람들일까, 아니면 청와대 쪽의 사람들일까?
    학자들일까, 아니면 정치인들일까?


    전부 아니다.
    이런 높으신 분들이 어찌 그런 자잘한(?)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정치인들이나, 정부쪽이나 단 한 번도 일본에 공식적으로 약탈문화재에 대한
    반환 요청을 낸 적이 없다고 한다.
    해봤자 소용없다는 고정 관념 때문일 것이다.


    그럼, 누가 이런 기적 같은 일을 성사 시켰는가?
    바로 위에서 언급한 봉선사 “혜문 스님” 이시다.
    물론 스님과 함께 일한 분들이 여러 분 계실 것이다.

    정부는 이분들이 해 놓은 것을 가저다 생색만 낸 것이다.


    혜분 스님은 그동안 일본에 40여회를 왕래하면서 일본의 문화재 관련 인사는
    물론, 국회의원, 궁내부 사람들, 행정관료 등등...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만나
    교우하고 설득하여 이 같은 반환의 결단을 이끌어 냈다 한다.
    물론 이번 반환은 빙산의 일각이지만 앞으로 꾸준히 반환운동을 지속 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여기서 2010.8.16일 한국일보 기자(남경욱)가 스님과 인터뷰 한
    내용 중 일부를 발췌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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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록과 달리 '의궤'는 말부터 어려워요. 어떻게 국민들에게 관심을 환기시킬까 고민하면서 3가지 의궤에 주목했어요.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는 명성황후를 죽이고 2년 2개월에 걸친 국장 기록까지 약탈한 일제라는 점을 부각시킬 수 있었고, '보인소의궤'는 조선 왕의 옥새를 만든 기록, '대례의궤'는 고종의 황제 즉위식 기록이라 일반인이 이해하기 쉬웠던 거죠.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를 부각시키느라 <조선을 죽이다>라는 책도 썼습니다. 명성황후를 죽인 칼 ‘히젠도’ 를 찾아낸 것도 그 과정에서였어요." ....중략....

     
    2006년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를 구성해 의궤 반환운동을 주도해온 혜문 스님.
    일본 도쿄대에 소장돼 있던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 명성황후 시해에 쓰인 칼인
    히젠도(肥前刀), 고종의 투구와 갑옷 등 드러나 있지 않던 우리 문화재를 찾아낸
    혜문 스님은 '문화재 환수 운동의 기인(奇人)'으로 불린다.


    혜문 스님은 출가 수행자라는 이유로 출가 이전의 약력을 밝히기를 거부하신단다.
    1998년 봉선사에서 출가 한 스님은 봉선사 주지스님이며 은사이신 철안 스님이
    2003년 산하 27개 전통 사찰의 문화재 조사를 혜문 스님께 맡겼단다.
    그 때부터 문화재 제자리 찾기에 관심을 가지고 일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찾아낸
    것이 삼성미술관 리움에 있던 현등사 사리구이고, 2005년 삼성 리움박물관을
    상대로 '현등사 사리구 반환 운동'을 벌린 것으로 시작으로 


    조선왕조실록환수위원회 간사,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 사무처장,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을 맡아왔다.
    스님은 현재 봉선사에서 수행 중이시다.


    “혜문 스님, 파이팅~~”
    “스님 꼭 성불하세요.”
    "스님 수고 하셨습니다."


    >미지로

     

     

    *참고 자료

     

    ●혜문스님이 계시는 경기도 남양주시 "봉선사"는 어떤 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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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선사(奉先寺)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이다. 조계종 제25교구의 본사이다. 고려 광종 20년인 969년에 승려 탄문이 운악산 자락에 절을 창건하고 운악사라고 부른 것이 봉선사의 전신이라고 전해진다.

    봉선사로 이름을 바꾼 것은 조선 예종 때인 1469년이다. 왕의 어머니인 정희대비가 죽은 남편 세조의 능을 운악산으로 이장하여 광릉이라하고, 이 절을 세조의 명복을 비는 사찰로 삼아 '선왕을 받든다'는 뜻으로 봉선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예종은 친필 현판을 하사하기도 했다. 1551년에는 교종의 으뜸 사찰로 지정되는 등 사세가 번창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소실된 것을 1637년에 복구했으나, 한국 전쟁으로 또다시 전소되어 현대에 복원한 건물이 남아 있다.

    일제 강점기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역임한 태허(운암 김성숙)스님,운허스님이 머물렀고, 운허의 친척 형이 되는 이광수도 은거한 일이 있다. 이 때문에 이광수 기념비가 절 입구에 세워져 있다.

     

    ●봉선사 대종(奉先寺大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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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397호.
    높이 238 cm,
    입지름 168 cm,
    두께 23 cm,
    무게 2만 5000근.

     

    정상에는 쌍룡(雙龍)으로 된 꼭지가 있고, 어깨에는 복판(複瓣)의 연꽃무늬가 돌려져 있다. 종신은 중간에 세 줄기의 굵은 융기횡선(隆起橫線)을 쳐 상하로 구분하였으며, 윗부분에는 당초문 장식이 있고 안에 9유(九乳)를 갖춘 4각 유곽(乳廓) 4구(區)와 그 사이에 장신의 보살상 4구를 교대로 배치하였고, 상하에 범자(梵字)를 양주(陽鑄)하였다. 아랫부분에는 종구(鐘口)에서 훨씬 올려서 수파문대(水波文帶)를 돌리고 그 위의 공간에는 명문(銘文)이 꽉 차 있다.

    일부에 고식(古式)을 남기고 있으나 한국종 형식을 떠난 새로운 양식이다. 종명(鐘銘) 끝에 ‘成化五年七月 日’이라고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1469년(예종 1)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0-28 17:30:37 자유의날개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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