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춥다" 불만문자에 기관사 땀 뻘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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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당발 작성일16-07-18 10:43본문
“열차 출발합니다. 무리하게 승차하지 마시고 다음 열차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달 21일 오후 5시 25분. 서울 지하철 7호선 신풍역에서 도봉산행 7272호에 오른 장재일 기관사(44)가 마이크를 잡고 출발을 알렸다. 그는 “문이 닫히려는 때 억지로 타는 승객 때문에 문이 세 차례 다시 열리면 열차가 출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여름은 지하철 기관사들이 제일 긴장하는 때다. 불쾌지수가 오르는 계절 특성상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2000년 서울 지하철 7호선 개통요원으로 입사한 16년 차 베테랑 기관사인 장 기관사와 퇴근시간 도봉산∼신풍 구간 36.3km, 34개 역 왕복 운행을 동행했다. 그는 3000여 명이 타고 있는 열차에서 승객들이 매 역에서 타고 내리는 동안 안전문(스크린도어) 센서와 볼록거울, 폐쇄회로(CC)TV로 안전을 확인했다. 1인 승무제인 5∼8호선에서는 기관사가 모든 승객의 안전을 책임진다.
차내 냉방은 기관사의 최대 고민이다. 급증하는 냉난방 문자 민원 때문에 운행에 집중하기 어렵다.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지난해 받은 냉난방 문자 민원 9만5831건 중 57%가 여름(5∼9월)에 몰렸다.
3호선, 9호선과 만나는 고속터미널역을 지나자 승객 무게로 차내 혼잡도를 측정하는 계기판 속 ‘승차율’이 40%를 넘었다. 최고 기온이 31도에 육박했던 이날 장 기관사는 열차 내 16개 냉방기 출력을 최대로 올렸다. 그는 “같은 칸에서 춥다, 덥다며 번갈아 민원을 넣는 문자에 대응하느라 안전문 확인, 비상 제동 등 안전을 놓치는 건 아닐지 긴장한다”고 말했다.
“춥다는 민원으로 냉방을 줄였더니 비상인터폰으로 ‘에어컨 안 트냐’며 욕을 하거나 온도가 자신과 맞지 않는다며 종착역까지 일곱 차례나 인터폰으로 험한 말을 한 승객도 있었어요. 비상 통신수단인 인터폰 벨이 울리면 기관사의 긴장은 최고 수준이 되죠. 이러다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승객 간 통신이 막힐 수도 있어요.”
1시간 10여 분을 달려 도봉산역에 도착한 열차는 6시 40분 부평구청행 7331호로 바뀌었다. 퇴근시간 대표적인 혼잡 열차 순번이다. 지난해 인천 연장 후 승객이 늘었다. 승차율은 분당선 환승역 강남구청역에서 40%를 넘어 고속터미널에서 73%를 기록했다. 발 디딜 틈 없는 ‘지옥철’이다. “먼저 타겠다”며 닫히는 열차 문에 무리하게 승차를 하려는 승객 때문에 역마다 할당된 승차시간 30∼40초를 초과하기도 했다. “열차 간격을 맞추라”는 관제센터의 무전이 쉬지 않고 이어졌다. 장 기관사는 “무리한 승차로 운행 지연은 보통이고 승객이 문에 낄 수 있는 아찔한 일도 많았다”며 “혼잡시간에는 승객들이 2분 간격의 다음 열차를 타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2시간 반의 운행을 마친 장 기관사는 신풍역에서 다음 기관사에게 7331호의 남은 여정을 맡겼다. 2013년 1000여 명의 기관사 중 최고 기량을 인정받아 ‘자랑스러운 도시철도인상’을 받은 베테랑 기관사의 눈에 ‘지하철 속 세상’은 어떻게 보였을까.
“일행을 기다린다며 문을 못 닫게 가방, 우산을 끼워 넣거나 약냉방 칸의 냉방이 덥다며 문자 민원을 보내는 것처럼 점점 남에 대한 배려가 사라지는 것 같아 씁쓸할 때가 많아요. 양보의 미덕이 안전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이라는 걸 잊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출처: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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